*** 이하의 글은 김이지변호사가 중도일보의 전문인칼럼에 기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필자는 대전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로서, 법률가인 동시에 법률사무소를 이끄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률만이 아니라 경영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마침 리더십의 심오한 철학을 가진 경영자이자 컨설턴트인 분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자주 많은 가르침과 영감을 받곤 한다.
가끔은 내 부끄러운 밑바닥을 직시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처지로 내동댕이쳐지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온갖 욕을 다 듣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경영에서는 풋내기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경영 멘토이시다.
며칠 전에도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자괴감 속을 허우적거렸다. 최근 사무소를 이전하려는 중이어서 지금의 사무소 공간을 보러 부동산에서 종종 온다. 하루는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문을 똑똑 두드리는 거다.
왜 그러냐 했더니,
방금 전화가 와서 사무실을 보러 온다는데, 상담 중이어서 지금은 곤란하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벌써 도착했다고 한다는 거다. ‘잠깐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니 그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고 의뢰인에게 사정을 짧게 설명하고 상담실 문을 잠시 개방하여 주었다.
그 이야기를 나의 경영 멘토에게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표정이 달라지더니 어떻게 그런 무례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뢰인은 자기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상담하고 있는데, 변호사라는 사람이 고작 사무실 임대나 걱정하며 의뢰인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행동하였다는 거다.
만일 자기가 그 의뢰인이었다면, ‘왜 갑자기 남들이 들어와 이리저리 보느냐’ 불쾌감을 표시하고 바로 박차고 나가버렸을 것이라고 하신다.
필자의 행동은 고객 제일주의가 뭔지 모르는 것이라는 거다. 부동산에서 잠깐만 보겠다고 해도, ‘지금 의뢰인과 상담 중이니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어야 한단다.
다른 곳은 이미 둘러보았고 상담실만 보는 데 1~2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20분도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도, 기다리게 하는 사람도. 잠깐인데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할지도 모른다. 남의 시간을 많이 버리게 하고 있다는 불편한 마음에, 끝날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 욕을 먹으면서 나의 내면에서도 그런 합리화가 한참 진행되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안에서 상담하고 있는 고객이 옛날로 치자면 왕이라고 해보자. 왕께서 어떤 고뇌를 하고 있는데, 잠깐이라는 이유로 자기 일을 보겠다고 왕을 방해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지 않을까? 알아서 근처에도 가지 않고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조심하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내 의뢰인을 그 정도로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임대인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부동산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나를 믿고 와준 의뢰인을 하잘것없는 자리로 끌어내린 것 아닌가.
부끄러웠다. 많은 고민 끝에 단독 개업을 했고, 세상에 넘쳐나는 변호사 중에 ‘나’라는 한 명의 변호사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어떤 정신으로 일을 할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주춧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왔건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기본을 망각한 것이었다.
차라리, 이런 실수를 하고 욕을 먹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데에 나의 의뢰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는 그런 변호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기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변호사의 존재 이유, 의뢰인들이 내게 보내는 신뢰, 그리고 내가 그에 마땅한 보답을 하고 있는지 반성(反省)을 한다.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겠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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